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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3 12:11  Hit:1088
관리자 (admin) 정의화 의장이 통일전문가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jpg 

정의화 의장이 통일전문가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jpg



- 정의화 명예이사장, 분단당시 동서독의료보건협정의 역할 논의 -

 

* 일시: 2015년 11월 23일(월) 오후 7시 30분(한국시간 11월 24일 오전 3시 30분)

* 장소: 마리엔 광장


정의화 명예이사장(국회의장)은 독일 통일전문가들과 초청간담회를 갖고 독일이 통일하기까지의 경험과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정의화 명예이사장은 모두발언에서 “독일분단에 비해 한반도분단은 동족이 총칼을 겨눈 6.25전쟁이란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양국 분단에 따른 역사적 차이로부터 오는 영감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신경외과 의사출신인 나는 특히 동서독 의료보건협정 체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통일 후 이러한 협정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알고싶다”면서 “대한민국은 독일통일에 부러움과 존경을 갖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루어 세계인류평화에 기여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의화 명예이사장의 프라이카우프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롤란트 얀(Roland Jahn) 문서관리청장은 “프라이가우프는 결과적으로 희망의 씨앗이 되었으나 사실 동독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차원이었으며, 일부 정치범 중에는 오히려 동독 정부가 고의로 서독으로 추방하려는 인사도 있었다”면서“서독에서 많은 몸값을 지불하면서 동독정치범들을 데려오면서 동독체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답했습니다.

 

냉전시대에 의료보건협정체결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질문에라이너 에리체스(Rainer Erices) 박사는 “당시 브란트 총리의 ‘접근을 통한 변화와 꾸준한 동방정책으로 동서독간 왕래가 자유로워지면서 서독이 동독주민들에 대한 의료지원이 가능해졌다”면서 “당시 낙후된 동독의 의료를 도와주려는 서독의 이해관계와 인도주의적 교감의 영향으로 의료보건협정체결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르놀트 바아츠(Arnold Vaatz) 의원은“북한 해주지역 방문 당시 수술실이 없어 산모 수술 후 스테이플러를 사용하거나 치과드릴을 가동하기 위해 자전거를 밝으며 전기를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북한 실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라디오, 인터넷을 통해 외부 세계의 모습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