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의약품 70% 풀뿌리에 의존

◆북한 의료실태와 남북협력 토론회◆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이후 급격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최근 햇살이 비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최종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의료협력이 절실하다. 매일경제신문사, 북한경제전문가100인포럼(회장 이상만 중앙대 교수), 남북의료협력재단(이사장 정의화 국회재정경제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27일 여의도 산업은행 IT센터에서 `남북 의료분야 협력 현황과 전망` 토론회를 개최해 북한 의료 현실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남북 의료협력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北 의료 수준 우리의 70년대 수준 = 이날 토론회에서는 북한 의료 분야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남북의료협력재단 이사장인 정의화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은 이날 특별강연을 통해 "북한 의료 현실은 과거 우리나라의 70년대 수준으로 낙후돼 있고 90년대 초부터 진행된 경제적 어려움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은 현재 의료시설을 가동할 수 있는 전력 공급, 전**을 예방하기 위한 수질 개선, 영양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식량난 해결 등 기본적인 보건의료 인프라스트럭처가 구축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북한 제약산업이 9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면서 의약품 부족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자연에서 주어진 풀뿌리를 중심으로 생산 가공되는 고려약에 전체 의약품의 7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인구의 사망 원인을 살펴봐도 북한 의료 수준의 낙후성을 짐작할 수 있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연보(97년)에 따르면 북한의 사망원인은 식량 부족 현상으로 인한 내분비, 영양 및 대사질환이 33%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기초 의료시설만 갖추고 있다면 치료 가능한 특정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24%), 순환기계 질환(7%) 등의 순이었다. 북한의 경기침체가 보건의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역의료보건팀장은 `남북 교류협력사업 현황과 방향`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영유아 사망률, 모성 사망률, 결핵 사망률, 감염성 질환 증가와 평균 수명 감소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연재해와 대외관계 악화에 따른 경기침체를 꼽았다. 자연재해로 식량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발육부진, 영양실조, 면역기능 저하로 이어져 전염성 질환을 가져온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한의 대외관계 악화에 따른 경기침체는 식수ㆍ전력 부족현상을 심화시키고 공중보건 및 의료체계 악화, 약품생산 저하와 냉동유통의 어려움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소화기계 질환, 급성호흡기계 질환, 결핵, 기타 감염성 질환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 구호성 의료 지원만으로는 안돼 = 이날 토론회에서는 대북 의료 지원이 남북의 경제ㆍ군사적 협력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지금보다 확대된 지원과 함께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토론회를 후원한 산업은행의 김창록 총재는 "이제 인도적 대북 의료지원 활동이 구호성 지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의학지식 교류 및 보건의료시설 설립 등으로 범위와 대상이 확대돼야 한다"며 "이 같은 지원이 남북 화해 증진과 평화체제 구축의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화 위원장도 "남북 의료협력이 북한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와 안정 차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했다. 남북 의료협력 확대가 필요한 이유도 제시했다. 그는 "남북 의료협력 확대는 의료시설 부족 등으로 간단한 질병조차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는 북한 현실에 대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필요하다. 또 궁극적으로 남북간 화해와 평화 정착을 위해서도 남북 의료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북 의료협력은 통일비용을 절감하고 사회적 통합을 조기 달성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규모 의료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간단체와 국제기구의 의료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인식을 전환해 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임규준 매일경제신문 과학기술부장은 "현재 북한에 대한 보건의료지원이 소규모 민간단체나 국제기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보건의료지원 규모가 미미하다고 본다. 물론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정부 지원이 추진돼야 하겠지만 매년 최소500억원대의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나미 팀장은 "북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처럼 대북 의료지원은 구호적 지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발, 복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가 단위 대북 보건의료사업 목표 설정과 장단기 계획 수립 등 북한 지원을 위한 우리 내부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결핵 등 각종 질병 치료를 위해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는 유진벨재단의 인세반 회장은 "북한을 돕는 최선의 길은 기존 병원이 있는 곳에 추가로 병원을 짓는 일이다. 기초부터 병원을 새로 짓는 일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기존 병원을 도와서 그들이 역할을 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종성 기자]